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속에서 천불이 나고 피가 역류하는 것 같습니다. 자영업 하면서 별의별 진상 다 겪는다고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역대급이라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글이라도 남겨봅니다.
때는 지옥 같던 8월 연휴가 딱 끝나가는 다음 날이었습니다. 연휴 내내 몸 부서져라 일하고 겨우 숨 좀 돌리려던 연휴 마지막 날 저녁 7시쯤이었어요. 매장 전화벨이 울리더라고요. 받으니까 다짜고짜 다음 날 아침 6시 30분에 단체 예약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겁니다.
사실 저희 가게 오픈 준비하고 식사 준비하려면 아침 6시부터는 가능하긴 하거든요. 속으로는 '아, 연휴 다음 날 아침부터 단체라니 몸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매출 올라가니 감사하게 하자' 싶어서 흔쾌히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죠. 인원을 물어보니 17명이라는 겁니다.
어차피 메뉴가 국밥이라 회전율도 빠르고, 아침 일찍 재료만 미리 넉넉하게 세팅해 두면 큰 문제없겠다 싶어서 기분 좋게 알겠다고 했습니다. 예약자 성함이랑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근처 행정복지센터 팀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요즘 세상에 노쇼가 워낙 많다 보니까 원래대로라면 무조건 예약금(선입금)을 받아야 맞는 건데요.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바로 앞 관공서 직원이라 하고, 본인 직책까지 '팀장'이라고 호탕하게 밝히니까 "아, 설마 공무원이 거짓말하고 째겠어?" 하는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별도 예약금 없이 그냥 내일 제시간에 맞춰서 오시면 된다고 안내하고 기분 좋게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연휴 피로가 전혀 안 풀린 상태에서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새벽같이 가게로 나갔습니다. 17명 손님이 들어오자마자 지체 없이 드실 수 있게 17인분 분량의 육수 끓이고, 콩나물이며 고기며 밑반찬까지 아주 정갈하게 싹 세팅을 해뒀습니다. 테이블 세팅까지 완벽하게 마치고 6시 30분만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6시 30분이 되어도 조용한 겁니다.
35분, 40분이 지나도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더라고요.
이상하다 싶어서 어제 전화 온 팀장이라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말이 정말 가관이더군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아, 저희 사정이 생겨서 오전 9시로 시간 변경했는데요?" 이러는 겁니다.
순간 멍해졌습니다. 아니, 시간을 변경할 거였으면 새벽에 나와서 준비하는 자영업자한테 미리 전화 한 통 해주는 게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 예의 아닌가요? 속에서 1차로 욱하는 게 올라왔지만, 그래도 아침 장사이기도 하고 '그래, 9시에 17명 다 오면 참자' 싶어서 꾹 참고 다시 물었습니다.
"팀장님, 그럼 9시에는 확실하게 17명 다 오시는 거 맞죠? 재료 준비 다 해놨습니다."
"네네, 그때 갑니다. 온다니까요."
그 말을 믿고, 새벽에 차려둔 반찬과 재료들 마르지 않게 다시 다 정리하고 마스크 고쳐 쓰며 9시까지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전 9시. 가게 문이 열리더라고요.
반가운 마음에 문 쪽을 쳐다봤는데… 들어오는 인원을 보고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하나, 둘, 셋… 끝.
딸랑 3명이 걸어 들어오는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오더라고요. 17명 예약에 3명이라니요. 나머지 14명은 다 어디 가고 3명만 왔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그 사람들은 미안하다거나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에 털썩 앉더니 국밥 딱 3개 시키더라고요.
27,000원.
새벽같이 나와서 17명분 밑반찬 깎고, 육수 끓이고, 테이블 세팅하고, 예약 시간 빵꾸 때워가며 2시간 반 동안 기다린 결과가 겨우 27,000원짜리 매출이었습니다.
정말 속에서 열불이 나고 머리 끝까지 피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당신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동네 자영업자 상대로 장난치냐, 노쇼 피해 어떻게 보상할 거냐"고 소리라도 치고 뚝배기라도 깨부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긴 시골이고, 자그마한 동네잖아요. 소문도 빠르고, 바로 옆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라 괜히 얼굴 찌푸리고 싸웠다가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날까 봐… 그 가슴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분통을 이 악물고 참아냈습니다.
그 3명은 자기들끼리 껄껄거리며 국밥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27,000원 계산하고 쿨하게 나가더군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참 허탈하기도 하고, 자영업자라는 처지가 왜 이렇게 서글픈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시골이고 동네 장사라지만, 관공서 타이틀 달고 직책까지 밝히면서 예약했으면 최소한의 상식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취소나 시간 변경, 인원 변경이 생겼으면 제발 전화 한 통이라도 먼저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도 텅 빈 테이블 위에서 서글프게 식어버린 17인분의 밑반찬들을 정리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네요. 다른 사장님들도 절대 '관공서다', '아는 사람이다' 하는 말에 속아서 선금 없이 단체 예약 받지 마세요. 진짜 피눈물 흘립니다